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직봉전쟁 (문단 편집) === 지방관 임명 문제 === 그러던 중 안휘독군 [[니쓰충]]의 병이 깊어 후임 독군을 임명하는 상황이 되었다. 장쭤린은 [[장훈복벽]]을 일으켜 [[선통제]]를 복위시켰던 [[장쉰]]을 신임독군으로 추천하였는데 이는 자신의 넷째딸 장회경이 장쉰의 아들 장몽조에게 시집을 가서 장쉰과 장쭤린이 사돈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휘사람들이 장쉰의 취임을 반대하였고 이에 장쭤린은 자신의 다른 사돈인 포귀경을 추천하였다. 포귀경의 아들 포육재는 장쭤린의 장녀 장관영과 결혼한 상태였다. 반대로 직계는 장문생을 추천하면서 장쉰 임명을 결사반대했고 대총통 [[쉬스창]]은 이를 수용하여 장쉰 임명안을 부결하였다. 이어 1920년 12월 강소독군 겸 장강순열사, 영위대장군 [[리춘]]이 영위대장군에 임명된지 이틀만에 갑자기 권총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리춘은 차오쿤, 장쭤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막강한 세력을 구축한 인물이었지만 정신병이 있어서 갑자기 그렇게 죽고 말았고 리춘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직계와 봉계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장쭤린은 다시 장쉰을 신임 강소독군 겸 소환상 삼성 순열사에 추천했다. 하지만 강소사람들이 장쉰을 반대하자 다시 자기 자신이 직접 강소독군에 임명되고 장쉰을 봉천독군에 임명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차오쿤은 전 국무총리 [[왕스전]]을 소환상 삼성 순열사로 추천하고 리춘의 부하 [[치셰위안]]을 신임 강소독군에 추천하였다. 쉬스창은 명망높은 북양군벌의 원로 왕스전을 임명하는 편이 정치적으로 적절하다고 여겨 12월 3일 왕스전에 즉각 소환강 삼성 순열사에 부임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치셰위안을 강소독군에 임명했다. 안휘와 강소독군 모두 직계의 뜻대로 처리가 되자 봉계의 불만이 깊어졌고 이를 감지한 쉬스창은 진윈펑에게 명하여 텐진에서 4거두 회의를 개최, 시국의 당면과제들을 처리하자고 제안하여 텐진에서 4거두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